내 첫 커리어이자 정들었던 김캐디를 퇴사하며,,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1년 반 동안의 시간들을 되짚어본다.
# 첫 시작
본방사수 프로젝트를 종료한 후,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학교에서 뛰어나 봤자 우물 안의 개구리고 나의 인생에서 큰 의미가 없겠구나..
(이때까지 과수석에 목을 매며 학점에 연연하던 나의 지난 과거가 후회됐다.)
그래서 무작정 현업 씬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찾아본 결과 ICT 학점연계 프로젝트 인턴십이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상당히 솔깃했는데, 한 학기 동안 회사에서 인턴활동을 하며 무려 전공 15학점까지 챙겨주는 굉장히 엄청난 프로그램이었다.
그 당시 나의 상황에서 안 할 이유가 전혀 없었고, 그렇게 입사할 기업들을 탐색한 결과 김캐디라는 곳이 나의 목표에 부합하는 곳임을 단박에 깨달았다.
김캐디를 선택한 주요한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 이제 막 성장하고 있는 규모의 기업일 것. (이미 완성된 곳보단 밑바닥부터 성장하는 경험을 쌓고 싶었다.)
- 팀 내 개발자의 비중이 적어도 40% 이상일 것.
- Co-Founder분들의 실력 보장?!
- 서비스의 비전
크게 이 정도였던 것 같다.
이 프로그램은 3곳을 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데 나는 그냥 운명처럼 김캐디 하나만 바라봤다.
증명은 재림이형(김캐디 CTO) 깃허브를 찾아내어 지원서 제출일 이전인데도 탐색한 당일날 바로 팔로우 했다.
(입사하고 나서도 말하기 전까지 맞팔 안 해준 건 함정,,)
갈 곳을 결심했으니 도전만이 남았는데, 사실 너무 수월했다.
이 ICT 학점연계 프로젝트 인턴십도 나름대로의 채용절차를 거쳐 뽑히게 되는데,
바로 코딩 테스트 > 면접의 절차를 거치게 된다.
운이 좋게도 그때 당시의 나는 UCPC와 ICPC때문에 알고리즘에 미쳐 살았던 터라 코딩 테스트는 너무 쉽게 통과했다.
(합격 후 어떻게 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인데, 지원자들 중 압도적인 최단 시간에 만점으로 통과했다. ^_^)
면접의 경우 처음 보는 터라 걱정이 많이 됐지만, 그래도 본방사수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그렇게 막 떨리진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면접을 보러 갔더니, 회의실 TV에 본방사수 사이트를 켜놓고 계셨다.
이때 전전 사무실이니까 신논현 가라지 공유 오피스였다. 사실 공유 오피스에 로망이 있었는데... 출근하고 나니 첫 사무실로 이사해버렸다.
하도 오래전이고 엄청 많은 대화가 오가서 면접 내용이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하나만 복기해 보면 ‘마케터(비 개발자)에게 API에 대한 설명을 해주세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것보다 내가 김캐디에 대한 질문을 이것저것 많이 준비해서 갔는데 그중 하나가 그 당시 구버전 웹사이트에 파이어베이스 키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환경 변수에 넣으셔야 할 것 같다고 말을 했었다. (생각해 보면 아마 그때가 재림이형이 당황한 처음이자 마지막 모습인 것 같네..)
여튼 면접도 매우 잘? 보았고, 나는 매를 먼저 맞는 성격이라 면접 일정도 앞쪽에 잡았는데 감사하게도 면접이 끝나고 강남역으로 가던 중 뒷사람에 상관없이 바로 합격이라고 전화를 주셨다. 그때 형들이 바로 밥 먹자 했는데 내가 미금에 안과 검진이 있어서 병원을 갔던게 기억에 남는다.
이건 엄청 뒤에 맥주 한잔하며 들은 건데, 그때 형들이 나를 뽑은 이유는 개발 실력도 실력이지만 하나의 팀을 꾸려 이끌 수 있는 능력을 높이 보셨다고 한다.
그렇게 김캐디에서의 인턴 생활이 시작되었고, 개발자로서의 첫 커리어가 시작되었다.
# Software Engineer at Kimcaddie
사실 인턴 시절부터 생각을 하기엔 까마득해서 복기를 해보아야만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인턴 시절에 인턴처럼 일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무슨 말이냐면 서비스 전체를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한 큼지막한 프론트, 백엔드 프로젝트 2개를 동시에 진행했고 9시에 출근해 밤 10시까지 매일 일하고 그랬으니..
나중에 이걸 야근이라고 부른다는 걸 깨달았지만,, 뭐 내가 자발적으로 재밌고 하고 싶어서 한 거고 실제로 아침에 회사 근처 고시원에서 일어나 회사까지 껑충껑충 뛰어갔다ㅋㅋㅋ 일하고 성장하는 게 너무 즐거워서...
김캐디는 인턴 혹은 수습 기간이 지나면 항상 회고를 하는데 내가 준비했던 발표 자료를 다시 보니 정말 많은 일들을 했구나라고 깨달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CTO 재림이형이 어떻게 현업 개발 경험이 전무한 고작 인턴인 나한테 저 프로젝트들을 믿고 맡겼던 건지 궁금하면서 감사하다.. (물론 내가 그냥 저질러 버린 것들도 있지만...)
심지어 스크린 골프 예약 서비스인데 제일 중요한 예약 서버를 나에게 전적으로 맡기셨다는 게 지금 봐도 정말 아이러니하다. 아 물론 인프라 아키텍처는 같이 고민하고 설계를 도와주셨다!
무난?하게 인턴 생활이 끝나고, 정규직 전환과 함께 나는 프론트와 백엔드 중 백엔드가 더 재밌었기에 백엔드 엔지니어링을 좀 더 중점적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이때부터 메인 API 서버를 만져야 해서 파이썬과 장고를 처음 접했다.)
그리고 내가 0부터 만든 프로젝트들의 유지 보수와 피처 달리기, 신규 프로젝트, 신규 입사자 온보딩 등등.. 열심히 기여하고 헌신하고 성장해왔다.
뭐, 사실 회고에서 개발 얘기 주구장창 해봤자 의미도 없고,,
굳이 가장 생각나는 개발적인 업무를 하나 꼽자면 전문성과 성장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예약 서버 이관기인 것 같다.
언급한 고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퇴사 부검에서 하기로 하자...
# 퇴사 부검
진짜 가족처럼? 실제로 가족보다 팀원들과 더 많이 같이 있었으니,,
추억 팔이를 해보자면
사무실 이사도 2번이나 했고,
워크숍을 빙자해 놀러도 많이 갔고,
단체로 풋살 하러 다니고,
마이스터고에 채용 홍보를 가기도 하고,
야근하며 야식 시켜 먹고,
크리티컬한 장애도 내보고 ㅎ
새로 들어온 팀원분들이 점점 많아져 이젠 다 친해지기도 어려워졌을 때
나는 팀을 떠나게 되었다.
내가 뭐라고.. 나를 붙잡기 위해 수많은 설득과 연봉 인상 그리고 스톡옵션도 받았지만,
떠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하고 싶었던 서비스를 도전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코파운더 형들에게 내가 했던 본방사수 프로젝트와 김캐디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돌아온 대답은 단 하나 유저가 있냐 없냐의 차이였는데 이를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고심 끝에 퇴사 후 내 서비스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에 들어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아름다운 부검이다.
하지만 또 다른 큰 이유도 있는데,
작은 조직이기에 그리고 시니어의 부재로 내가 감당해야 하는 고통이 너무 심했다.
업무량이야 내가 열심히 하는 거에 비례하니 극복이 되지만, 내 코드의 퀄리티는 아무도 보장해 주지 못했다.
쉴 새 없이 진행되는 피처 달리기에 급급했고, 주니어도 아닌 이제 막 개발 시작한 내가 짜는 코드들이 내가 봐도 현업 수준의 코드라 말하기 부끄러웠다.
뭐 내가 공부하면서 발전시키면 되지 않나? 결국 핑계 아닌가? 라고 생각도 해보았지만,
김캐디에서 개발을 하기에 커리어적인 전문성에 손해를 보는 게 객관적으로 명확했다.
클린 코드, 디자인 패턴, 테스트 등은 고사하고 코드 리뷰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말 다 했다.
이는 입사 후 꾸준히 요청해온 바였지만 소규모 팀이고 성장하기 바쁜 팀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이해했다.
특히, 서비스의 핵심인 예약 서버를 내가 0부터 리뷰 없이 혼자 개발했고 거기서 오는 부담과 압박이 정말 심했다.
물론, 모든 것엔 트레이드오프가 있는 것을 알기에 악감정은 전혀 없다!
나에게는 하나하나 정말 소중한 경험들이었으며,
앞으로 내 커리어에서 김캐디 출신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기에!
마지막까지 따뜻한 말과 과분한 선물, 고별 회식 그리고 이별 롤링페이퍼까지 작성해 주신 김캐디 식구들에게 정말 감사했다는 말로 회고를 마무리한다.
먼 훗날 퇴사자 모임에서 들었는데, 전무후무한 퇴사 이벤트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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